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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도농교류농촌체험

희망은 아름답다_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박영일 부원장 박영일의 농촌예찬_제68호[1사1촌,도농교류]



희망은 아름답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신묘년’이니만큼 토끼처럼 폴짝폴짝 신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왕이면 나 자신과 마을 발전도 함께 하는 두 마리 토끼를 포섭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인디언들은 황야를 전 속력으로 질주하다가 갑자기 멈추어 선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는지 살피기 위해서란다. 바쁜 삶 속에서도 자신을 성찰하는 쉼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누구나 지나온 한 해를 돌이켜보면 보람도 있겠지만 아쉬운 면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반성이 따르고 새로운 각오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지나간 것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도록 하자.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했다. 속담에 ‘1년을 넉넉하게 살고 싶으면 벼를 기르고, 평생을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꿈을 기르라’고 했다. 꿈은 아름다운 내일을 약속해 주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니고 있다. 희망이야말로 절망을 이겨내는 유일한 대안이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다. 필자는 가끔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희망’이란 두 글자를 의도적으로 마음에 되새겨본다. 마음의 위안이 되고 새로운 힘이 난다. 철학자 스티븐슨은 ‘희망은 일생의 어느 시기에도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도 산뜻한 햇살이 쬐이고 있다. 먼발치에는 며칠 전 내린 순백색 눈의 잔설로 아름다운 모자이크 형상을 빚어내는 듯하다. 인류 역사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 말씀 대신 ‘태초에 마을이 있었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마을은 영험이 서려있는 한없는 사랑의 대상이다. 맑은 자연과 순박한 인간의 군상이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요람이 바로 마을인 것이다. 마을은 사람과 사람 사이 또 사람과 자연 사이에 고유한 근원적 관계를 이루며 생활하는 곳이다. 위대한 철학자 이반 일리치도 「그림자 노동」에서 ‘토속의 가치’를 강조하며, ‘고유한’은 옛 숨결을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고유한”은 ‘마을’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팽창되는 자유무역은 석유자원의 소비증가와 이산화탄소 발생과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양극화 초래, 자본 중심의 경제활동으로 인간성 상실 등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에 대응하는 패러다임은 자원과 자연을 보호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지역’과 ‘마을’ 중심의 생활패턴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다. 일터와 삶터가 함께 하고 녹색공간이 받쳐주는 그러한 생활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튼튼한 지방화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자립하는 생태적 마을공동체가 핵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소박하지만 그게 자연을 보호하고 가치 있는 존귀한 삶이 될 것이다. 고갈되는 자연자원과 환경파괴는 우리 모두의 공멸을 야기 시킨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가 아니라 ‘자연의 품에서’살아야 한다. 인간을 잉태한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본성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과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농사의 법칙이다. 인간의 미래는 마음에 얼마나 지혜와 의지의 씨앗을 단단히 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꿈이 주민공동의 꿈으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 미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변화와 차별화만이 그 답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역’과 ‘마을’을 행복의 구심점으로 삼아 진정한 삶의 가치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마을의 그림을 그려보자.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마을모습’을 정의하자.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