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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관리자’가 고인을 ‘대행’한다

사후 관리자’가 고인을 ‘대행’한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유산 관리 서비스업체’ 속속 등장…법적 다툼 예상돼 법률가의 역할도 중요해져
[1103호] 2010년 12월 08일 (수)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이제는 임종이라는 것이, 자녀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는 게 아니라 ‘삭제(Delete)’ 버튼을 한 번 누르는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교수가 말하는 ‘삭제’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고 저장했던 온라인상의 모든 정보의 삭제를 의미한다. 그는 “앞으로는 파편화되고 분산된 (온라인상의) 나의 존재를 찾아서 체계적으로 삭제하는 것이 죽음의 중요한 의례 중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곳곳에 뿌려진 개인정보를 취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이 일일이 확인해 기록해 두는 데도 한계가 있거니와 고인이 된 가족 구성원의 개인정보를 찾는 데도 법률상 제약이 뒤따른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해둔다면 고인이 되고 나서도 온라인상에서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 끊임없이 이메일이 오고, 친구들이 안부를 묻는 상황이 발생한다.

   

디지털 유산 관리 시대가 되면 이런 틈새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외에서는 디지털 유산과 관련한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선 새롭게 등장하리라고 예상되는 것이 ‘디지털 유산 관리 서비스업체’이다. 디지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유산 관리 업체에 의뢰하면 사후 폐기하거나 존속 또는 양도하는 일을 한다. 디지털 재산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이를 해결하는 디지털 유산 전문 ‘법무법인’과 ‘디지털 변호사’의 등장도 가능하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고인이 상속인에게 위임을 하더라도 고인의 디지털 유산으로 인해서 나타날 수 있는 피해 주체는 상속인이 된다. 때문에 상속인의 권리에 대한 법적 분쟁이 있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법률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라고 말했다.

임주환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 원장은 개인이 죽고 난 후의 디지털 유산을 위탁 처리하는 전문 업체가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른바 ‘사후 관리자’의 등장이다. 본인이 죽은 후에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계속 운영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가족이나 친구 중 대리인을 찾기 힘들 때 ‘사후 관리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고인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SNS 등을 관리해주는 사후 관리자는 정보의 취합과 보존을 다루는 정보 관리 역할에 그치지 않고, 고인을 ‘대행’할 수도 있다. ‘사후 관리자’를 통해 죽은 이의 홈페이지가 ‘살아 있는 홈페이지’로 운영되는 것이다. 이들은 블로그나 카페 등의 운영을 위탁받아 수익을 창출한 후 수익금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받거나 일정 금액의 관리 수수료로 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 제기되기도

‘디지털 장례식’과 관련한 비즈니스 모델도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족적을 추모하는 디지털 장례식장,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디지털 장의사, 온라인 묘지 등이 각광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법적 다툼이 있을 경우 법률가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흩어진 개인정보의 집적을 통해 사후에 대비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정보 집적에 따른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에 각종 온라인 계정의 ID와 패스워드를 분류해 저장하게끔 하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었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업체가 지속되지 않거나 정보를 해킹당할 경우 개인정보 유출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디지털 유산을 접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만약 개인이 ‘레거시 라커’에 가입해 일정 금액을 내며 정보 관리를 위탁한다고 했을 때 회사가 언제까지 운영될 것인지, 나의 모든 정보를 회사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사항이다.

고인과 관련한 동영상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 추모 사이트였던 ‘이터널스페이스(EternalSpace)’는 디지털 장례식장을 표방하며 개설되었지만 현재는 홈페이지를 닫은 상태이다. 아직까지는 비즈니스 모델로서 불확실성을 다 걷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은 어디에나 있다. 현재로서는 그러한 것들이 하나의 새로운 아이디어 사업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정보가 유출되거나 회사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피해 보상이나 권리 분쟁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개인의 디지털 유산이 성공적으로 상속된다 해도 예상되는 문제점은 있다. 상속된 정보들이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닌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재현 서울대 교수는 “저작권 문제와 비슷하게 고인의 정보에 상품성이 있다면, 그에 대한 이권 다툼이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유산 상속의 시대는 원하든 원치 않든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두 번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미래가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새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는 디지털 유산 관련 사업들

‘레거시 라커’ 창업자인 제레미 토맨은 이메일을 즐겨 사용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계정에 접속하거나 그녀에게 온 이메일에 답변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이 디지털 유산(유품)을 관리하는 사업이었다.

그의 회사는 생전에 개인이 자신의 이메일을 포함한 각종 온라인 계정을 라커(locker)에 보관해두면 개인이 사망한 뒤 유언을 통해 미리 지정해 놓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해당 정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유언에 따라 온라인 재산을 보관·처리하는 일종의 ‘디지털 유언 집행자’인 셈이다. 지난해 초 미국에서 ‘레거시 라커’가 설립되면서 이와 유사한 업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마이웹윌(Mywebwill)’을 비롯해 사후에 디지털 재산을 보관·관리해주는 ‘애셋로크(AssetLock)’ ‘데스위치(Deathwitch)’ ‘슬라이틀리모비드(Slightly Morbid)’ ‘비탈로크(Vitallock)’ 그리고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제공되는 ‘데이터인헤리트(DataInherit)’ 등은 대표적인 디지털 정보 관리 서비스업체이다. 이들 중 일부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대부분 유료 회원을 모집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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